\

[디즈니 플러스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 - 시즌1 3화> 손과 손목 그리고 신념]

2025. 3. 13. 00:09드라마/드라마 정보

반응형

디즈니 플러스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 - 시즌1 3화>는 손과 손목을 계속해서 클로즈업합니다.


데어데블/맷 머독과 킹핀/윌슨 피스크는 여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비슷합니다.

 

지난주 디즈니 플러스 마블 텔레비전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이 시작하면서 맷 머독과 윌슨 피스크는 각자 자신을 재창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맷 머독은 절친이자 사업 파트너 프랭클린 포기 넬슨이 죽으면서 새로운 파트너인 커스틴 맥더피와 함께 법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범죄와 직접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치료사 헤더 글렌과 관계를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윌슨 피스크는 긴 은거 끝에 돌아와서 뉴욕을 가면을 쓴 자경단원으로부터 구해내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성공적인 시장 선거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듯합니다. 맷 머독은 한때 회피했던 시스템을 신뢰하고, 윌슨 피스크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권력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3화에서는 인상적인 시각적 구성을 활용하여 맷 머독과 윌슨 피스크의 유사점과 도전을 보여줍니다.

 


카메라는 데어데블/맷 머독과 킹핀/윌슨 피스크의 상처 난 손은 의도적으로 집중합니다.

 

이번 주 공개된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 - 시즌1 3화>는 상처가 난 손과 피 묻은 손가락 관절에 초점을 맞춰 맷 머독과 윌슨 피스크 사이에 의도적인 평행선을 그립니다. 맷 머독은 지난 2화에서 부패한 경찰들을 상대하며 손을 더럽혔습니다. 이러한 상처는 3화 내내 반복되어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카메라는 팬들에게 맷 머독 자신이 억제하려는 악마를 상기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상처 입은 손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윌슨 피스크의 사무실 장면은 책상 위에 놓인 윌슨 피스크의 손을 의도적으로 집중합니다. 딱히 부상을 당한 손에 대한 원인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 시각적인 장면을 특히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은 대화 없이 등장인물을 집중하여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윌슨 피스크와 맷 머독은 상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카메라는 단순히 내적 갈등을 물리적 표현으로 끌어냅니다.

 

가톨릭 신앙이 도덕적 나침반의 중추를 형성하는 맷 머독에게 이러한 흔적은 데어데블이라는 외투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불의에 직면했을 때 본능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반대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학을 구사하는 윌슨 피스크에게 피투성이가 된 손가락 마디는 한때 범죄의 왕으로 권력을 잡았던 남자가 시장 권한 아래 숨어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데어데블/맷 머독과 킹핀/윌슨 피스크는 영웅과 악당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는 자아들의 충돌로 바라봐야만 합니다.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 - 시즌1 3화>의 피 묻은 주먹 구성은 시리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이중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킵니다.

 

맷 머독은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헥터 아얄라를 변호하는 데 전념하며, 헥터 아얄라의 신원을 화이트타이거라는 자경단원으로 밝혀 소송에서 이기도록 도움을 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립니다. 맷 머독은 법 시스템 내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길에 대한 진지한 헌신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맷 머독의 멍든 손을 비추는 클로즈업 장면들은 시스템이 무고한 증인을 보호하지 못했을 때, 증인 니키 토레스의 아파트에서 불가피하게 벌였던 폭력적인 싸움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만듭니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맷 머독이 부패한 경찰들을 상대할 때 데어데블이 아닌, 맷 머독의 신분으로 나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고려하면 맷 머독의 상처 입은 주먹은 곧 두 정체성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윌슨 피스크에게 피 묻은 손이란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데, 뉴욕의 새 시장으로 선출된 윌슨 피스크는 가면을 쓴 자경단원 문제를 해결하고 정당한 권위의 수호자로서 자신을 내세웁니다. 철저하게 구축된 윌슨 피스크의 공적 이미지는 과거 킹핀으로서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나 윌슨 피스크의 손에 난 설명되지 않은 부상은 정치적으로 변모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어떤 문제는 직접적인 물리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시각적 단서는 피스크의 합법성이라는 가면이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주며, 폭력이 여전히 윌슨 피스크의 본능적인 해결 방식임을 시사합니다.

 

이전의 슈퍼히어로물의 서사가 영웅과 악당을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그렸다면,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피 묻은 손의 시각적 구성을 통해 맷 머독과 윌슨 피스크가 생각보다 더 닮아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이중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정한 상황에서 본능적인 충동이 촉발될 때 공적인 모습과 개인적인 본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들의 부상은 단순히 개별 사건의 흔적이 아니라, 그들의 근본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창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새로운 길을 가려해도, 두 사람은 여전히 폭력으로 정의되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뉴욕 경찰들은 퍼니셔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을 가졌습니다.

 

잠시 2화로 되돌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헥토 아얄라는 한 남자가 두 남자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개입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어진 싸움에서 한 경찰관이 넘어져서 지하철 선로로 떨어져 지하철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헥토 아얄라는 경찰 살인범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체포되었습니다. 한편 맷 머독은 자경단 페르소나를 버리고 오로지 법조계 생활에만 집중하고 있다가 헥토 아얄라를 변호하게 되면서 빠르게 시험대에 오릅니다.

 

경찰관 파월은 헥토 아얄라가 도발 없이 자신들을 공격했다고 이야기를 조작하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고 부인하면서 헥터 아얄라가 보호하려던 니키 토레스를 사건에서 지워버립니다. 2화 마지막에 맷 머독은 파월과 다른 경찰관과 맞서야 했는데, 이 부패한 경찰들은 헥터 아얄라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목격자인 니키 토레스를 제거하려고 시도합니다. 이 장면에서 부패 경찰 파월의 손목에 해골 문신이 보이는데, 이것은 퍼니셔의 잔인한 트레이드 마크에 대한 충성심을 알립니다.

 


뉴욕 경찰의 퍼니셔식 신념은 변질되었습니다.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 - 시즌1 3화>는 퍼니셔가 뉴욕 경찰에 미친 불안한 영향력을 더욱 깊이 탐구합니다. 헥터 아얄라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는 법정에 참석한 여러 경찰관들의 모습을 비춥니다. 그들 중 다수가 파월과 같은 해골 문신을 새기고 있으며, 이것은 퍼니셔의 신념을 받아들인 더 큰 세력이 경찰 내부에 존재함을 암시합니다. 이들은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들만의 정의를 실행하며, 아무런 제재 없이 행동합니다.

 

그들의 영향력과 위협 전략은 니키 토레스가 증언하기 전에 또 한 번 목숨을 노리면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한편, 은퇴한 경찰이자 맷 머독의 조사원으로 일하는 체리는 거짓 정보를 흘려 진짜 증인을 호송하는 척하며 부패한 경찰들의 관심을 돌립니다. 그 사이 니키 토레스는 안전하게 법정으로 이동하지만, 이 전략은 완벽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성공합니다.

 


맷 머독이 헥터 아얄라가 화이트타이거라는 정체를 공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이트타이거는 죽임을 당합니다.

 

니키 토레스는 신체적으로 무사히 법정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로 가득 찬 법정에 마주하게 됩니다. 파월처럼 퍼니셔 추종 경찰들이 더 많이 있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인 증언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번복하며, 사건 당시 지하철역에 있지 않았다고 거짓 진술을 합니다. 이 충격적인 거짓말은 맷 머독의 주요 변호 전략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자경단 사상을 따르는 경찰들이 사법 시스템 내에서 얼마나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증인에게 위증을 강요할 수 있으며, 이것은 퍼니셔의 철학이 법의 수호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얼마나 깊이 타락시켰는지를 강조합니다.

 

맷 머독은 헥터 아얄라의 무죄를 입증하고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맷 머독은 배심원들에게 헥터 아얄라가 화이트타이거라는 사실을 공개합니다. 자경단으로서 헥터 아얄라가 쌓아온 수많은 업적을 활용하여 헥터 아얄라의 인성을 증명한 결과, 배심원단은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다음 날 밤, 헥터 아얄라는 화이트타이거의 복장을 입고 뉴욕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그러나 그 순간, 방탄조끼에 퍼니셔의 로고를 그린 의문의 인물에게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프랭크 캐슬의 정의를 경찰관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프랭크 캐슬은 부패한 경찰을 싫어하고, 정의를 왜곡하면서 자신의 상징을 사용하는 경찰에 혐오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퍼니셔의 방법은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매력적이지만, 결코 미화되거나 모방되어서는 안 될 사회 질서의 근본적인 붕괴를 나타냅니다. 프랭크 캐슬은 영웅이 아니라 법적, 도덕적 제약의 경계를 완전히 벗어나 활동하는 심하게 손상된 대량 살인범이며, 프랭크 캐슬이 주인공이 되는 만화 역사 전반에 걸쳐 자신의 본성과 목적에 대한 이 진실을 반복해서 인정했습니다.

 

원작 코믹스 <퍼니셔 #13>에서 매튜 로젠버그(Matthew Rosenberg) 작가와 시몬 쿠드란스키(Szymon Kudranski) 만화가는 법 집행 기관이 퍼니셔의 두개골 상징을 채택하는 현실 세계 현상을 직접 다루었습니다. 강렬한 장면에서 프랭크 캐슬은 자신의 방법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경찰관을 만나고, 한 경찰관은 순찰차에 퍼니셔 마크 스티커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프랭크 캐슬의 반응은 즉각적이었고 명확했습니다. "한 번만 말할게. 우리는 똑같지 않아. 너희는 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어. 너희는 사람들을 돕지. 난 오래전에 그걸 다 포기했어.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하지 않아. 아무도 하지 않아." 프랭크 캐슬은 두개골 엠블럼을 난폭하게 떼어내며 경찰들에게 "네 놈들에게 롤모델이 필요해? 그의 이름은 캡틴 아메리카고, 그는 너희를 만나서 기뻐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이 순간은 프랭크 캐슬이 자신의 존재가 열망이 아니라 정의 시스템의 실패를 나타낸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수많은 퍼니셔 스토리라인에서 프랭크 캐슬은 영웅주의를 명백히 거부했습니다. 원작 만화 <퍼니셔: 워 존>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했고, 원작 만화 <퍼니셔 맥스 #21>에서 "살인에는 끝이 없어. 그저 임무가 있을 뿐이지. 전쟁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봉사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퍼니셔의 신념과 공권력의 신념은 철저히 다릅니다. 공권력이 퍼니셔를 추종할 때 그들은 부패합니다.

 

퍼니셔 캐릭터의 제작자인 제리 콘웨이(Gerry Conway)는 퍼니셔 상징의 오용에 대해 강한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저는 권위적인 사람들이 퍼니셔 아이콘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퍼니셔는 정의 시스템의 실패를 상징하기 때문인데, 퍼니셔는 사회적·도덕적 권위의 붕괴와 경찰이나 군대 같은 기관이 공정하고 유능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제리 콘웨이는 법 집행 기관이 퍼니셔의 심벌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내재된 모순을 강조한다고 말합니다.

 

"자경단에 대한 안티히어로는 본질적으로 사법 체계를 비판하는 존재이며, 사회적 실패의 예입니다. 따라서 경찰이 퍼니셔 해골 문양을 차량에 부착하거나 군인들이 퍼니셔 패치를 착용하는 것은 결국 그들이 시스템의 적과 같은 편에 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무법자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퍼니셔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든, 퍼니셔의 윤리적 신념을 존경하든 간에, 퍼니셔는 무법자이며 범죄자입니다. 경찰은 범죄자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이 이 주제를 강렬하게 탐구하는 이유는 이러한 현상이 초래하는 위험한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 퍼니셔를 추종하는 경찰들은 적법한 절차를 완전히 무시한 채, 협박, 증거 조작, 증인 강요, 그리고 결국 살인까지 자행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법 집행관들이 공공의 봉사자가 아닌, 스스로를 처벌의 집행자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래 잡아야 할 범죄죄가 직접 되어버린 것입니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프랭크 캐슬은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방식이나마 일관된 도덕적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 경찰들은 자신들의 방식만을 채택하고, 어떠한 원칙도 지키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오히려 퍼니셔가 처단하려 했던 부패한 권력자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드라마 <데어데블: 본 어게인>은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바로 상징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퍼니셔의 해골 문양은 결코 명예의 배지가 아니며, 특히나 이미 실제 배지를 달고 있는 경찰들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출처 : 디즈니 플러스(디즈니+, Disney+, Disney Plus), 마블 코믹스, MCU(Marvel Cinematic Universe), 마블 스튜디오, 마블 텔레비전

 

반응형

TWD.Shouting님의
글이 좋았다면 응원을 보내주세요!